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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 칼럼

KTX 개통 20주년, 우리 주변에 나타난 변화-1

by Mr.Car 2024.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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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1

여러분들은 2004년생 대표 주자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아이브의 장원영과 레이, 리즈? 제로베이스원의 리키와 김규빈? 트리플에스의 김채연과 코토네, 지연? 뉴진스의 민지와 하니? 엔믹스의 설윤과 배이? 위클리의 이재희와 지한? 엔하이픈의 정원? 미스트롯3의 참가자 나영과 김소연? 메이딘의 수혜? 우아의 루시와 민서? 케플러의 서영은과 히카루, 휴닝바히에? 포항스틸러스의 이규백, 박형우 선수? 아일릿의 윤아와 민주, 모카? 이들도 있지만 하나가 빠졌습니다. 바로 KTX입니다. 2004년 4월 1일 KTX가 처음 개통한 이래 KTX는 개통 당시의 경부, 호남선 2개 노선과 서울, 광명, 천안아산, 대전, 동대구, 밀양, 구포, 부산, 서대전, 익산, 광주, 목포의 13개 역에서 현재 경부고속선, 호남고속선, 동해선, 경전선, 중앙선, 경강선, 전라선, 중부내륙선, 수원 경유 KTX, 구포 경유 KTX, 서대전 경유 KTX의 11개 노선과 74개 역으로 운행 구간이 증가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 교통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는데 기존의 통일호, 비둘기호, 무궁화호, 새마을호로는 불가능했던 서울-부산 2시간 30분 시대가 왔으며 동시에 국내선 항공편을 상대로도 우위를 점하게 되었습니다(특히 대구와 목포의 경우에는 항공편이 단항 되었으며 울산, 광주의 경우에는 KTX역보다 공항이 가까움에도 항공편이 감편되었습니다). 그리고 개통 초기 당시의 KTX-1 46 편성에서 KTX-산천 38 편성, KTX-이음 19 편성, KTX-청룡 2 편성을 합한 총 105 편성으로 늘어났으며, 올해 6월에는 우즈베키스탄에 KTX-이음 기반 열차를 수출함으로써 고속열차 수출국으로 발돋움했습니다. 또한 올해 연말에는 중앙선 KTX, 서해선 KTX와 같은 새로운 KTX 노선이 생길 예정이기도 합니다. 이번 시간에는 KTX 개통 20주년을 맞아서 우리 주변에 나타난 변화에 대해 말해보고자 합니다.

KTX, 넌 누구냐?

KTX 개통으로 인해서 우리 삶에 나타난 변화에 대해 말하려면 먼저 KTX에 대해 알아야겠죠? KTX란 Korea Train eXpress의 약자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빠른 열차를 의미하며 특히 Express라는 글자는 무궁화호와 새마을호에서 빼앗아 우리나라에서 빠른 열차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일반열차는 2012년 ITX 청춘, 2015년 ITX 새마을, 2021년 ITX 마음이 추가되면서 Express를 되찾았습니다. 물론 ITX 청춘은 번호로만 따지면 광역전철 차량이지만, 요금은 일반열차와 비슷합니다.) 또한 2004년 4월 1일에 첫 노선이 개통한 이래 적자였던 한국철도공사에서 유일하게 흑자를 보았으며 동시에 제주도를 제외한 국내선 항공편의 감축과 함께 일부 지방공항에서는 서울행 국내선 항공편이 단항 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거기다가 공주와 청주를 제외한 일부 지역에서는 버스에 비해서 우세를 보였으며 기존의 경부선과 경부고속도로가 기록한 서울-부산 5시간을 서울-부산 2시간 30분으로 단축하는 효과를 냈습니다. (공주의 경우는 공주역 주변의 연계교통이 불편하기 때문에 지금도 버스와 같은 도로교통이 우세입니다.) 이처럼 KTX가 개통한 이후로 대한민국의 교통망은 장거리 항공편과 도로 우세에서 철도 우세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또한 KTX가 개통함으로써 서울에서만 열리던 행사를 지방으로 분산시키는 효과도 냈습니다. 2012 여수 엑스포, 부산국제영화제, 2018 평창 동계올림픽, 2005 부산 APEC 역시 KTX가 없었다면 성공하지 못하거나 알려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KTX의 개통 및 역사

KTX에 대해 알아봤으면 이번에는 KTX가 개통하기까지의 과정과 역사에 대해서 소개해야겠죠? 사실 KTX가 KTX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처음부터 나온 것이 아닙니다. 또한 KTX가 2004년에 개통해서 처음부터 2004년에 개통을 계획한 줄 알고 있는데 사실 KTX는 초기에는 1999년이나 2002년 개통이 목표였습니다. 하지만 건설사의 사정과 사업비 예측 실패로 인한 공사비 상승,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계속 미뤄지다가 2004년 4월 1일에 개통이 된 것입니다. 또한 KTX 선로는 1992년에 시공했습니다. 즉 KTX가 개통하기까지는 12년의 시간이 걸린 셈입니다. 그럼 KTX는 1992년부터 계획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KTX는 1963년에 한국의 철도기술자들이  신칸센 개통 직전에  시속 240km로 다니는 시험 열차에 동승한 뒤 한국에 귀국해서 고속철도의 장점과 필요성을 담은 보고서를 정부에 제출함으로써 시작되었습니다. 즉, KTX는 초기 구상부터 개통까지 37년이 걸린 셈입니다. 이제부터 KTX가 개통하기까지의 과정과 역사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1970년대 ~ 1980년대 초반 : 고속철도 논의의 시작

1970년, 박정희 대통령은 관계부처에 서울-대전 간 급행철도 논의를 지시했습니다. 또한 당시 철도청(코레일의 전신)의 체질 개선을 위해 경부 신간선, 경전 신간선, 호남 신간선에 대해서도 논의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현재 운행 중인 KTX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그럼, 이 두 가지 논의가 동시에 시작되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서울-대전 간 급행철도는 한국 고속철도, 즉 KTX의 일부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지금의 KTX에 가까운 계획은 무엇이었을까요? 앞에서 말했던 경부 신간선, 경전 신간선, 호남 신간선의 한국형 신간선(신칸센) 계획이었습니다. 한국형 신칸센 계획은 당시의 일본국유철도(현재의 JR그룹)에서 신칸센을 건설함으로써 적자 탈출을 하는 것을 보고 계획이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당시에 세웠던 계획들이 현재 KTX의 뼈대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시 철도청(현재의 코레일)에서는 왜 한국형 신칸센 계획을 세웠을까요? 바로 1970년 경부고속도로의 개통으로 촉발된 자동차와 도로 관련 정책으로 인해서 철도 교통이 뒷전으로 밀려났기 때문입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경부고속철도, 지금의 경부선 KTX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으며 두 번째 이유로는 향후에 발생할 경부선의 수송 체증 대비였습니다.

이 논의가 시작된 지 8년 후인 1978년부터는 <대량 화물수송체제 개선 및 교통투자 최적화 방안 연구>에 들어갔는데 이 연구는 3년 후인 1981년에 완성되었습니다. 이 연구에서는 경부축에 새로운 철도건설을 제안했는데 바로 여기서부터 KTX 계획이 나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제5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 계획에는 서울-대전 고속철도, 지금의 경부고속선 1단계 구간의 계획이 발표되었습니다. 2년 후인 1983~84년에는 미국 루이스 버져, 덴마크 캠프삭스, 국토교통연구원, 현대엔지니어링이 공동으로 참여해서 경부축 장기 교통투자 및 고속철도 건설의 타당성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그 결과 경부선 철도 및 경부고속도로가 1990년 초까지 한계용량에 도달해서 새로운 교통시설 확충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장기적으로는 타 교통수단보다 고속철도가 유리하다는 결론이 도출되었습니다. 그럼에도 10년간 타당성 조사만 반복하면서 아까운 시간이 지나갔는데, 1987년 대통령 선거를 계기로 극적인 계기가 찾아왔으며 이때 경부고속선, 춘천속초선이 공약으로 제시되면서 KTX 추진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대 후반~ 1990년대 초반 : 본격적인 고속철도 추진

1989년 5월 8일, 경부고속철(지금의 경부고속선)의 건설이 결정되었으며 그해 7월부터 1991년까지 철도청에서 기술조사를 실시했는데 12개의 노선 대안과 3개의 역대 안, 3개의 속도 대안을 비롯한 총 108개의 대안을 놓고 비교한 결가 내부수익률이 애초보다 5% p 높은 19.4%로 나타나서 경제적 타당성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1년 후인 1990년 6월에 확정된 고속철도 사업계획 및 노선은 제3차 사회간접자본건설위원회의 의결을 거쳤는데 이때 추정된 금액은 경부선 기준 5조 8462억 원이었습니다.

1년 후인 1991년에는 고속철도건설공단, 지금의 국가철도공단이 설립되었으며 그해 6월에는 경부고속철, 지금의 경부고속선의 노반실시 설계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때부터 한국의 고속철도 건설이 본격화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노선 및 역 위치 선정에 대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이 엇갈렸는데 이를 조율하고 조정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때 의견을 조절하지 못했다면 KTX 노선에 굴곡이 많아져서 일반열차와 시간 차이가 없었을 수도 있으며, 대한민국의 철도 수송 분담률이 올라가지도 못했을 겁니다.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조율하고 1년이 지난 1992년, 고속철도 세부 노선이 확정되었으며 그해 6월 30일에는 경부고속철도의 기공식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같은 날에는 충남 아산군, 지금의 아산시에서 KTX 시험선 구간인 천안-대전(현재의 대전조차장역) 구간의 착공에 들어갔습니다.

한편, 고속철도 운행을 위해서는 고속열차가 필요한데 고속열차의 선정을 위해 일본의 신칸센, 독일의 ICE, 프랑스의 TGV가 참여했습니다. 이 세 고속열차 중에서 프랑스의 TGV가 선정되었는데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신칸센의 경우는 동력분산식임에도 성능이 동력집중식인 TGV와 차이가 나지 않았습니다. 또한 기반 차량으로 내놓은 신칸센 300계 전동차의 경우, 모형이나 콘셉트 이미지도 없는 베이퍼웨어였으며 운행 당시에는 각종 결함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신칸센이 탈락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일본이 기술 이전에 부정적이었습니다. 일본 내에서의 중정비를 조건으로 내세운 것으로 보아하니 일본이 기술 이전에 부정적이었다는 것을 한 번에 알 수 있습니다. 거기다가 일본 협상단은 협상에 진지하게 임하지 않았습니다. 태도 역시 탈락에 한몫을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일본의 신칸센이 탈락한 후에는 독일의 ICE와 프랑스의 TGV가 경합을 펼쳤는데 결과는 프랑스의 TGV가 선정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프랑스의 TGV가 선정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파리를 중심으로 뻗어나가는 수도권 집중 방사형 체계가 우리나라의 철도 환경과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거기다가 우리는 차량뿐만 아니라 TGV의 유지보수 시스템까지 도입했는데 프랑스의 경우는 파리 중심의 방사형 고속철도망을 유지하기 위해 빠른 시간 내의 유지보수를 하고 철수하는 시스템이어서 우리나라 철도 환경에 적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TGV가 최종적으로 선정된 이유는 두 가지뿐만 아니라 파격적인 차관 제공, 노반 및 분기기 등의 지상설비 및 운용 시스템 등의 국내 시스템 사용 허용, 자체 개발 시 라이선스 비용 면제, 시제차 1편성과 선행양산차 11편성을 제외한 24편성의 한국 생산 허용을 비롯한 기술 이전도 한 몫 했습니다. 그럼 기술 이전은 하늘에서 뚝 떨어졌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프랑스에서 기술을 이전해줄 때까지만 해도 프랑스 기술진들은 기술을 이전해도 소화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본전을 뽑아내리라는 우리 기술진들의 끈질긴 물밑 교섭 끝에 고속철도 관련 저작권, 기술 도입 중 새로 발견된 신기술에 대한 권리 선점을 비롯한 유리한 조건들을 따내는 것에 성공했습니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기술 이전을 받아낸 뒤 1994년 6월 14일에 TGV 기반의 한국형 고속열차, 지금의 KTX 1세대 차량의 도입 계약이 체결되었습니다. 이 계약은 알스톰을 필두로 현대정공, 대우중공업, 일진전기, LG산전(지금의 LS일렉트릭), 삼성전자 등이 참여하는 컨소시엄 형태였습니다.

1년 후인 1995년 6월부터 프랑스, 영국, 스페인 등 유럽 각지에서 부품 제작에 들어갔으며 또 1년 후인 1996년 10월 24일에 기관차의 제작이 완료되었습니다.(KTX 1세대 모델은 동력집중식이기 때문에 동력차의 구조가 기관차랑 비슷합니다. 애초에 동력집중식 차량은 양쪽에 기관차가 있어서 기관차가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리고 기관차 제작 5개월 후, 최종적으로 완성된 1호기의 모습이 공개되었습니다. 이 1호기는 1997년 5월 29일 프랑스 라루체의 알스톰 공장에서 최종제작을 마치고 공개되었습니다.

19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중반: IMF,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 고속철도

우리가 고속철도 건설을 이어가던 1997년, IMF 외환위기가 닥쳤습니다. 이 IMF 외환위기가 우리나라 모든 경제를 삽시간에 얼어붙게 만들었을 때 또 한 번 고속철도 건설의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비판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출발한 고속철도 건설을 되돌릴 수는 없었으며 1년 후인 1998년 7월에 고속철도 기본계획이 제19회 사회간접자본추진위원회에서 1단계 건설기간을 2004년으로 연장하고 2단계는 2010년에 완공하는 계획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이때 추정된 금액은 91년 최초 사업비인 5조 8,462억원에 비해 약 13조원이 증가한 18조 4,358원이었습니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1999년 12월에 충남 연기군(지금의 세종시)~ 충북 청원군(지금의 청주시 흥덕구, 상당구 일부와 청주시 청원구) 34.4km에서 시험 운행을 했습니다.

사실, 이 시운전이 KTX의 첫 시운전은 아닙니다. KTX는 1호기가 1997년 12월 17일부터 2000년까지 프랑스 현지에서 SNCF의 협조를 받아서 시운전을 실시한 것에 이어 첫 양산 제작차량인 2호기가 1998년 4월 18일 마산항에 입항한 이후 창원에 위치한 현대로템 공장으로 옮겨져 조립과 공정시험을 거친 뒤 1997년 10월 7일 고속철도건설공단(현재의 국가철도공단)에 인수된 후 고속선에 최초로 입선했습니다.

그럼, 1호기는 어떻게 됐을까요?? 1호기는 프랑스 현지 종합시험을 마치고 2000년 12월 21일에 마산항에 입항했습니다. 여기서 잠깐!!! 1호기가 2000년 12월 21일에 들어온 걸로 보았을 때 나머지 호기들은 안들어왔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프랑스 현지에서 제작한 선행양산차의 도입은 계속 진행되었으며 알스톰 사의 마지막 제작분린 12호기가 2000년 5월 14일에 마산항을 통해서 국내로 반입되었습니다. 이 프랑스 제작분들은 1년 후인 2001년까지 현대로템 창원공장에서 조립을 거치고 시운전에 투입되었습니다.(1호기부터 12호기까지 알스톰 패찰이 붙어있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럼, 12호기가 끝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1998년 10월 부터는 KTX의 국내 생산이 개시되었으며 13호기가 4년 후인 2002년에 공개되었습니다.

KTX-1 국내생산분

이 국내생산분은 13호기를 시작으로 2003년 11월 28일 46호기가 출고됨에 따라 생산이 완료되었습니다.(사진 속의 KTX는 36호기입니다.)

전 편성의 제작이 완료된 이후 현대로템과 고속철도건설공단(현재의 국가철도공단)에서 1~4만 km의 시운전을 거친 KTX는 2003년 10월 23일 7호기의 철도청(현재의 코레일)에 반입되었으며 2004년 3월 26일 마지막 국내생산분인 46호기가 반입되면서 모든 반입이 종료되었습니다.

또한 KTX 개통에 따라 주요 기차역에도 변화가 생겼으며, 광명역, 천안아산역이 개통했습니다.

광명역
KTX 서울역

특히 서울역, 대전역, 동대구역, 부산역의 경우는 KTX 개통을 앞두고 역사를 확장하기도 했습니다.

거기다가 KTX 개통 일주일 전에는 호남선의 복선전철화가 완료되었으며 사전 개통을 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사전 예매가 이루어지기도 했는데 특히 일부 매젠 사례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당시 구매자들에게도 KTX가 신기한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대망의 2004년 4월 1일, KTX가 경부, 호남선에서 첫 운행을 시작하였습니다.

갑천교를 지나가는 KTX

당시 운행 경로는 경부선의 경우 서울-광명-천안아산-대전-동대구-밀양-구포-부산, 호남선의 경우에는 용산-광명-천안아산-서대전-계룡-논산-익산-김제-정읍-장성-광주송정-나주-목포였으며 일부 열차의 경우에는 광주역에서 종착했습니다. 두 경로 모두 지금과 달리 기존선을 거치는 구간이 많아서 각각 2시간 45~50분, 3시간 40분이 걸렸지만 기존의 새마을호, 무궁화호로도 5시간 이상 걸리던 거리를 단축하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KTX란 이름은 저절로 나왔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KTX가 KTX가 되기까지는 여러 명칭 공모전을 거쳤습니다. 1999년 6월부터 2000년 6월까지 진행된 공모전에서는 코리아익스프레스, 코리아 특급, K-STAR같은 명칭들이 나왔지만 최종 후보로 선정된 건 'KTX'와 '비호'였으며 코레일에서는 두 가지 안 중에 각계각층의 의견과 선호도 조사 끝에 2003년 11월에 KTX로 확정지었습니다.

KTX가 개통하고 나서 2주일에서 조금 지난 2004년 4월 14일에는 이용객 수가 100만명을 돌파했습니다. 이는 100만명 도달에 3개월이나 걸린 TGV와 AVE, 최소 2개월 이상이 걸린 유로스타, 16~17일이 걸린 일본의 신칸센보다도 빠른 기록입니다. 

이처럼 한국의 철도는 KTX가 개통한 이후 상당한 변화가 나타났으며 특히 경부축의 경우에는 기존의 도로, 항공 우세에서 철도 우세로 돌아섰습니다. 특히 경부고속선 1단계 구간 개통 이전까지만 해도 수요가 있었던 김포-대구 항공노선의 수요가 줄어들다가 2007년에 폐지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기존의 새마을호, 무궁화호로는 불가능한 반나절 생활권의 시대가 열렸으며 이 시기를 기점으로 일반열차의 셔틀화가 추진되었습니다. 그러나 일반열차의 셔틀화가 추진되었을 당시에는 전라선, 동해선, 경전선에 KTX가 운행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철도 이용객들 사이에서 무리한 개편이라는 이야기가 나왔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장거리 편성이 부활하는 것과 같이 원래대로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일반열차에 변화가 없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KTX의 개통과 함께 일반열차에도 변화가 생겼는데 KTX 개통 이전 가장 높은 등급이었던 새마을호가 특급으로 떨어졌으며, 통일호가 폐지됨과 동시에 통근형 통일호의 경우는 통근열차로 바뀌었고, 무궁화호가 최하위 등급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거기다가 새마을호의 경우에는 주요 노선에서 중소도시 정차역이 많아지기까지 했습니다.(새마을호는 2009년에 포항으로 갈 때 타 본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새마을호(출처: 내 손안의 서울)

또한 이때를 기점으로 동차를 꺼리던 당시 철도청의 경향이 반전되었으며 후에 누리로, ITX-청춘, ITX-새마을, ITX-마음과 같은 동차 편성들이 늘어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거기다가 기존선의 용량이 줄어들게 되면서 수도권 전철이 기존선을 따라서 연장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차량번호가 기존의 4자리에서 6자리로 개편되었는데 KTX는 100000번대, 간선형 철도차량은 200000번대, 광역전철 차량은 300000번대를 받았습니다. 거기다가 열차번호 역시 개편이 되었는데 기존의 두 자리수에서 KTX 세 자리수, 새마을호, 무궁화호를 비롯한 일반열차는 네 자리수로 바뀌었습니다.

KTX가 개통하고 1년이 지난 2005년 1월, 한국철도공사(현재의 코레일)가 출범했습니다. 한국철도공사는 철도산업발전기본법, 철산법에 따라서 정부가 100% 출자한 공기업입니다. 또한, 고속철도건설공단이 현재의 한국철도시설공단, 현재의 국가철도공단으로 개편되었습니다. 그리고 KTX 패밀리카드 라운지가 개설되었으며 그해 3월 10일에는 VR을 활용한 KTX 사이버스테이션이 구축되었습니다. 

KTX 개통 초기에 문제점이 없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KTX 개통 초기에는 터널 내의 객실 소음에 대해 고객들이 개선을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코레일에서는 한국철도기술연구원에 2004년 5월부터 11월까지 6개월간 터널 주행 시 KTX 차량의 실내 소음 저감 방안을 위한 기초 용역을 의뢰했으며 동시에 콘크리트 도상 터널에서 소음도가 높아진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코레일에서는 이 두가지 사실을 기반으로 KTX 차량 사이에 설치된 머드플랩의 길이를 143mm로 늘리면  객실 소음이 현저히 낮아진다는 것을 알아냈으며 당시 운행 중이던 전 편성에 개선된 머드플랩을 적용함으로써 객실 소음을 3~4db 낮춤과 동시에 승차감을 개선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코레일에서는 도입 당시부터 KTX 내부에 설치되었던 CRT 모니터를 와이드 LCD 모니터로 바꾸었으며 특실뿐만 아니라 일반실에도 무선 이어폰 설비를 설치했습니다.

1년 후인 2006년 10월 3일에는 '좌석+입석'/'입석+좌석'의 KTX 병합승차권이 발매되었으며 이는 추석 연휴 귀성객들의 좋은 반응을 얻어 2007년 설 연휴에도 좌석 대비 15%이내로 운영되어서 6%의 좌석 확보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또한 그해 12월에는 KTX 이용객이 10만명을 돌파했으며 1년 후인 2007년 4월 21일에는 누적 이용객이 1억명을 돌파했습니다. 그 이후로 KTX는 대한민국 대표 교통수단이 되었습니다.

2000년대 후반 ~ 2010년대 초중반: 확대되는 KTX 노선과 국산 고속열차의 등장

2007년 6월 1일에는 김천, 구미지역 이용객의 편의를 위해 일부 동대구행 KTX가 기존선을 경유해서 김천역, 구미역에 정차하는 계통, 이른바 김천, 구미 경유 KTX가 개통했습니다. 이 KTX는 2010년 11월 1일에 김천(구미)역이 개통함으로써 폐지되었습니다.

그리고 그해 8월 28일에는 KTX 안에 영화객실이 도입되었는데 이는 세계 최초의 서비스였습니다. KTX 영화객실은 KTX를 이용하는 승객들에게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했으며 완전히 폐지되던 2014년까지 수능 수험생들을 위한 전용 관광프로그램에 활용되었습니다. 또한 그해 10월부터 KTX 핵심부품(브레이크패드, 객차인버터)의 국산화를 이루어냈습니다. 핵심부품의 국산화를 이뤄냄으로써 유지보수 효율성이 증가함과 동시에 비용이 줄어들었고, 동시에 KTX의 경쟁력이 높아졌습니다. 거기다가 그해 12월 7일에는 KTX 캐릭터(KTX 미니, 키로, 아로, 퉁스, 뭉클 아저씨, 키요)가 등장했으며 1년 후인 2008년에는 'KTX 차량 취급 및 응급조치 매뉴얼', '저탄소 녹색성장 비전 선포'와 함께 최고속도를 시속 305Km까지 높였습니다.

2008년에는 KTX 속도의 증속뿐만 아니라 국산 고속열차가 등장했는데 그것이 바로 KTX-2, 지금의 KTX-산천입니다.

KTX-산천

KTX-산천은 핵심부품인 연접대차, 유도전동기, VVVF 제어장치의 국산화가 이루어졌으며 기존의 KTX와 달리 10량 1편성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앞쪽의 연결기는 중련을 위해서 밀착식 자동연결기가 장착되었으며 이로 인해서 복합열차의 운행이 가능해졌습니다.

KTX 산천 복합열차(앞열차)
KTX 산천 복합열차(뒷열차)

또한 디자인이 기존의 KTX와 달리 더 유선형임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우리 토종 물고기인 산천어를 본따서 디자인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기존의 KTX와 비슷한 점도 많습니다. 운전석의 기기와 주요 조작계통의 배치, 동력집중식 형태, 주행 시에 팬터그래프를 1기만 올리는 것, 관절대차입니다. 특히 운전석의 기기와 주요 조작계통의 배치가 비슷한 이유는 조작 시의 혼동을 막기 위함으로 현재 운행중인 동력분산식 고속열차 KTX-이음과 청룐 역시 비슷한 형태를 지니고 있습니다.

1년 후인 2009년에는 KTX 이용객 수가 한해 100인 Km를 달성했으며 그해 3월에는 경부고속선 2단계 구간의 핵심인 금정터널이 관통되었습니다. 이 금정터널이 관통됨으로 인해서 경부고속선 2단계 구간 완공에 한발짝 더 가까워졌습니다. 그리고 그해 12월 19일에는 수도권철도차량정비단(고양기지)에 KTX 중정비 기지가 완공되었습니다. 이 중정비 기지가 완공됨으로 인해서 코레일에서 자체적인 중정비를 할 수 있게 되었으며 2013년에 대구역 KTX 추돌 사고가 발생했을 때 사고 KTX를 복구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2010년에는 KTX에 많은 일이 일어났는데 그 첫번째가 바로 KTX 산천의 운행입니다.

출발 대기중인 KTX-산천

KTX-산천의 운행은 KTX 개통만큼이나 큰 의미를 가졌는데 바로 우리 땅에 우리 고속열차가 운행하게 되었습니다. KTX-산천이 운행하게 됨에 따라서 우리나라는 고속철도 기술 보유국에 접어들었으며 이는 본격적인 고속열차 국산화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거기다가 복합열차의 운행이 가능해짐에 따라 목적지가 다른 두 열차를 중간역까지 같이 운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번째로 경부고속선 2단계 구간이 완공되었습니다. 경부고속선 2단계 구간이 완공됨에 따라 오송역, 김천(구미)역, 경주역(당시에는 신경주역), 울산역이 생겼으며, 동대구와 부산 사이에 완전한 고속선이 놓이게 되었습니다.

경부고속선 2단계 구간이 완공됨으로써 서울-부산간 소요 시간이 2시간 18분으로 줄어들었으며 동시에 경주, 울산 지역의 KTX 이용이 편리해졌습니다. 경부고속선 2단계 구간 개통이 불러온 결과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동대구에서 부산까지 고속선이 놓임에 따라서 서울-울산, 서울-부산 간 교통수단에도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대표적인 변화로는 서울-울산 구간의 철도 점유율이 올라갔습니다. 서울-울산간 항공편은 경부고속선 2단계 구간 개통 전에는 울산공항의 시내 접근성과 동해남부선(현재의 동해선 포항 ~ 부전 구간) 열차와 KTX 간의 맞지 않는 시간, 중화학 공업 수요까지 더해져서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경부고속선 2단계 구간이 개통함에 따라서 울산역이 울주군 언양읍에 세워짐에 따라 서울-울산 구간의 철도 점유율이 3.3%에서 62.7%로 상승하게 되었으며 동시에 항공 점유율이 25.7%로 급감했습니다. KTX 울산역의 개통은 KTX역보다 공항이 시내에서 가까운 울산의 항공 점유율 마저도 떨어트렸으며 더 나아가서 서울-울산 간 고속버스의 점유율까지 떨어트렸습니다.

울산역에서 출발하는 KTX
울산역

즉, 경부고속선 2단계 구간의 개통으로 인해 비행기와 고속버스 위주였던 서울-울산 간 교통수단이 KTX를 비롯한 철도 위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기존의 경로대로 운행하던 KTX는 구포 경유 KTX로 바뀌었습니다.

세번째로 KTX 컴퓨터차상제어장치의 국산화에 성공함에 따라 유지보수품의 수입 비용 문제를 해결했으며 더 나아가서 구매 비용을 약 16억원이나 절감했습니다. 또한 고속열차의 지속적인 기술개발 및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습니다.

네번째로 글로리 코레일, 지금의 코레일톡 앱이 만들어졌습니다. 2010년 12월 8일에 출시된 이 앱은 열차시간 조회 뿐만 아니라 열차의 예약, 결제, 발권, 반환까지 한번에 할 수 있게 되었으며 디자인 역시 사용자의 경험을 고려하였습니다. 그 결과 출시 2개월 만에 다운로드 횟수가 100만명을 돌파했습니다. 이후 3년 후인 2013년에 현재의 이름인 코레일톡으로 변경되었습니다. 현재 코레일톡은 철도 이용객 10명 중 8명이 이용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경전선 KTX, 수원 경유 KTX를 비롯해서 기존에 운행하지 않던 지역으로 KTX 노선이 확대되었습니다. 수원 경유 KTX는 대전역까지 기존선을 이용하다가 대전역 이남에서 고속선을 타는데 의외로 수요가 있어서 지금도 유지되고 있습니다. 또한 경전선에도 KTX가 운행됨에 따라 창원, 마산, 진주에서도 KTX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경부고속선 2단계 구간의 개통과 경전선, 수원 경유 KTX의 개통 이후 2010년대에는 많은 KTX 노선들이 생겼으며 특히 2011년에는 전라선 KTX가 개통되었습니다. 전라선에도 KTX가 다니게 됨에 따라 전주역, 남원역, 구례구역, 순천역, 여천역, 여수엑스포역(당시 여수역)에서도 KTX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전라선 KTX는 2012 여수 엑스포 당시에 많은 사람들을 태우고 서울과 여수를 오고감으로써 여수 엑스포 성공개최에 한 획을 그었습니다. 2년 후인 2014년 6월 30일에는 인천국제공항으로 가는 KTX가 개통했습니다. 이 KTX는 지방과 인천공항을 직통으로 이어주었지만 적은 수요 때문에 2018년에 폐선되었습니다. 대신 광명역과 인천공항을 이어주는 6770번 버스가 개통하였습니다.

1년 후인 2015년에는 호남고속선 1단계 구간이 개통했습니다. 호남고속선 1단계 구간의 개통은 서울에서 광주 구간의 시간을 1시간 40분대로 줄였으며 김포-광주 항공노선의 감축이 이루어졌습니다. 김포-광주 항공노선은 KTX 개통 이전에는 12회나 운항할 정도로 편수가 많았으며 광주공항의 도심 접근성이 좋았기 때문에 KTX 개통 이후에도 어느 정도는 수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호남고속철도 1단계 구간이 개통함에 따라 대한항공이 철수하게 되었으며 아시아나항공은 철수는 하지 않았지만 노선을 감편했습니다. 호남고속철도 1단계 구간의 개통은 KTX 울산역의 신설처럼 공항이 시내에서 가까운 광주광역시의 교통편을 철도 우세로 바꾸었습니다. 또한 서울-여수엑스포 구간의 시간도 2시간 57분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와인산천(현재의 SRT)

그리고 새로운 열차 역시 공개되었는데 와인산천, 현재의 SRT 1차분이 처음으로 영업운행을 시작했습니다. SRT 1차분은 SR 출범 이전에 전라선, 동해선, 호남고속선을 주행해 본 셈이지요. 또한 이때부터 광주광역시의 KTX 정차역은 광주송정역으로 단일화가 되었습니다.

거기다가 경부축에서는 포항역으로 KTX가 향하게 되었습니다.

모량고가

KTX가 포항역으로 가기 위해서는 위의 모량고가와 같은 특수 공법이 사용되었습니다.

KTX 포항역

포항역에 KTX가 들어오게 되면서 서울에서 포항까지 기존의 새마을호로 걸리던 5시간 20분에서 2시간 15분으로 줄어들었습니다. 또한 포항공항이 재개항 이후에도 항공편이 감축되는 것과 같은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대전, 대구 도심 구간의 개통입니다. 경부고속선 대전, 대구 도심 구간이 개통함에 따라 경부선, 동해선, 경전선 KTX의 소요시간이 5분 줄어들었으며 더 나아가서 열차 운영의 효율성도 높아졌습니다. 그리고 KTX가 개통한지 11년만에 5억명을 돌파하기까지 했습니다.

2010년대 후반 ~ 현재: 강원도로 향하는 KTX, 동력분산식 열차의 등장

2016년에는 전용역 제도가 폐지됨에 따라 용산역에서 경부선 KTX의 이용이 가능해졌으며 동시에 서울역에서 호남선 KTX의 이용이 가능해졌습니다. 이 방안이 나오게 된 계기는 그해에 SR이 출범하면서 SRT가 개통했기 때문입니다.(SRT 열차 중 22편성은 코레일에서 구매를 한 뒤 SR에 빌려준 열차입니다. 또한 대전조차장역 SRT 탈선 사고 시 KTX를 대체 차량으로 투입한 적도 있습니다.) 용산역에서 경부선 KTX의 이용이 가능해짐으로써 파주, 고양 시민들은 저렴한 가격에 경부선 KTX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양에는 행신역이 있지만 행신역에 KTX가 정차하는 이유는 수도권철도차량정비단 건설에 따른 보상 차원에서 운행을 하기 때문에 편수가 적습니다. 또한 용산역에서 KTX를 이용하게 되면 행신-용산 구간의 요금을 아낄 수 있습니다.) 또한 전라선/호남선 KTX가 서울역까지 운행함으로써 호남선/전라선 KTX의 이용객들도 서울 도심까지 편리하게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용산 착발 경부선/경전선/동해선 계열 KTX는 수요 부족으로 현재는 폐지되었습니다. 하지만 서울 착발 호남선/전라선 KTX는 수요가 나와서 지금도 운행 중입니다.) 

2016년에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나라가 시끄러웠으며 사람들은 손에다가 촛불을 들고 광화문 광장으로 모였습니다. 이때 지방에 있는 사람들도 서울로 상경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상황에서 KTX는 정부에 비판적인 민심을 가진 사람들을 서울로 실어날랐는데 어찌나 열망이 뜨거웠던지 명절이 아님에도 KTX표가 매진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1년 후인 2017년에는 KTX가 또 하나의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변화는 바로 KTX 셔틀버스와 광명역 도심공항리무진버스의 운행입니다. KTX 셔틀버스(8507번 버스)는 사당역 인근의 고속철도 접근성 개선을 위해 운행한 노선으로 다른 교통수단들과도 환승할인이 되어서 이용객이 많았습니다. 또한 광명역 도심공항리무진버스(6770번 버스)는 기존의 인천국제공항선 KTX와 달리 인천국제공항과 광명역을 빠르게 연결하여 주었습니다.

두번째 변화는 강원도로 향하는 첫 번째 KTX 노선, 강릉선 KTX의 운행입니다. 강릉선 KTX는 2017년 12월 22일에 개통했는데 당시 서울과 강릉을 오가던 가장 빠른 수단인 서울-강릉간 고속버스보다 50분 빠른 2시간을 기록했습니다. 또한 태백선 쪽으로 돌아가던 기존의 무궁화호와 달리 원주에서 강릉을 직선으로 이어주기 때문에 원주에서 강릉 간의 시간을 1시간으로 단축하는 효과도 냈습니다. 거기다가 날씨가 좋지 않으면 50km/h를 넘지 못하는 버스와 달리 폭설과 같은 긴급상황에서 100km/h(평시 버스 속도)로 달릴 수 있었습니다. 이는 강원 영동지방에서 큰 강점이 되었으며 특히 올림픽 유치 조건인 기상상황과 관계 없는 교통수단이라는 점에서 맞아떨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해에 평창동계올림픽이 개최되었는데 강릉선 KTX는 4,135회 동안 평창동계올림픽 선수단, 내외빈, 관람객 106만명을 수송했습니다. 또한 수도권 사람들이 올림픽을 당일치기로 관람할 수 있게 되었으며 올림픽이 끝난 이후에도 종종 매진이 되는 경우가 늘어났습니다. 강릉선 KTX의 성공은 춘천속초선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켰으며 더 나아가서 서울-강릉 간 고속버스, 동서울-강릉 고속버스 및 시외버스에 비해서도 우위에 서게 되었습니다. 거기다가 포항에 이어서 강릉에도 KTX가 다님에 따라 동해안 지역에 두번째로 운행을 시작한 KTX가 되었습니다.

세번째로 KTX 핵심 장치인 고속열차용 주전력변환장치, 견인전동기, 주행장치 등을 현대로템과 한국철도기술연구원에서 국산화했습니다. 이 장치들의 국산화가 성공함에 따라 견인전동기는 총 1,210kW의 속력을 낼 수 있게 되었으며 주전력변환장치는 기존의 KTX-산천 대비 10% 향상된 2,750kW로 늘어났습니다. 또한 기존의 차량과 호환이 가능함에 따라 KTX 산천의 정비에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주행장치는  KTX, KTX-산천의 주행속도인 300km/h보다 20%나 높은 350km/h까지 운행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코레일에서는 올해 4월에 이 기술들을 적용한 고속열차인 KTX-청룡을 공개했습니다.

2018년에는 구간과 횟수를 지정해서 최대 40%까지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횟수차감형 모바일 할인카드인 N카드가 도입되었습니다. N카드의 도입으로 인해서 출장 및 회의 참석이 많은 직장인과 주말 부부들이 편리하게 KTX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으며 필요할 때만 자유롭게 할인을 받을 수 있어서 승차권을 40%까지 할인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2019년에는 KTX가 개통한지 15년이 되었는데 코레일에서는 15주년 기념 차량사진전시회를 부산역에서 진행함과 동시에 대전역, 오송역, 천안아산역에서는 각종 문화 공연을 열었습니다. 또한 대전역에서는 4월 13일에 KTX 개통 15주년 기념 음악회가 열렸습니다. KTX는 개통 19년만에 강원도까지 가게 된 것입니다.

또한 2019년에는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가 열렸습니다. 이때는 인천국제공항행 KTX가 인천공항에서 광주까지 세계 각국의 수영선수들과 내빈들, 관람객들을 운송하기 위해 임시로 부활했는데 그 덕분에 세계 각국의 선수단과 내빈들, 관람객들이 빠르고 편리하게 광주까지 올 수 있게 되었으며 동시에 대회 초반기의 흥행을 이끄는 역할도 했습니다.(비록 마지막은 초라하게 끝났지만 KTX가 없었다면 초반 흥행도 없었을 것입니다.)

2020년대에는 KTX에 많은 변화가 생겼으며 특히 코로나19로 인해서 열차 운용에도 많은 제약이 걸렸습니다. 그럼에도 KTX 노선은 축소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늘어났는데, 대표적으로는 강원도의 동해역까지 KTX가 운행하게 되었습니다. 2017년에 강릉선 KTX가 개통함에 따라 동해시, 삼척시에서도 KTX 연장 요구가 빗발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무단횡단에 대한 안전이 담보되지 않으면 개통하지 않겠다는 코레일의 발표로 미뤄지다가 2020년 3월 2일에 개통이 확정되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서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데 코로나가 엔데믹화 된 현재는 관광 수요가 보장되었습니다. 거기다가 해군 1함대와 육군 제23경비여단으로의 접근성이 향상됨에 따라 외박과 휴가 출타자 및 동원훈련대상자들이 빠르게 동해까지 올 수 있게 되었으며 영동지방에서 기상악화와 무관하게 서울로 갈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수요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코로나가 종식된 현재, 동해행 열차도 주말, 휴가철마다 매진을 기록하게 되었으며 지역 주민들은 평일에도 열차를 늘려달라고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기존의 무궁화호에 비해서 동해까지의 시간을 단축하는 효과도 보게 되었으며 동해안 지역 도시 중 세번째로 KTX가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2020년에서 2023년 초기까지 지속될 때도 KTX는 멈추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해나갔습니다. 먼저 코레일에서는 KTX가 기지(수도권철도차량정비단, 호남철도차량정비단, 부산철도차량정비단)에 입고될때마다 방역을 실시했으며 열차 운행 전후에 소독을 추가로 실시했습니다. 또한 2020년 3월 28일부터 해외에서 입국한 코로나19 무증상자를 위해 해외입국자 전용칸을 만들어서 이들이 안전하게 포항, 울산, 대구, 광주, 강릉, 횡성, 동해, 평창, 대전, 여수, 목포, 익산, 전주까지 갈 수 있도록 했으며 코로나로 인해 우리나라로 돌아온 해외 교민들이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KTX 공항버스를 운행했습니다. 거기다가 의사, 간호사를 비롯한 코로나19 의료봉사자들의 KTX 무료 이동을 지원했습니다. KTX 이용 과정에서도 확진자가 나오지 않게 만전을 가했는데 사회적 거리두기의 일환으로 창측 좌석만 판매했으며 KTX 객실 환기 시스템의 가동을 12회에서 17회로 늘렸습니다.

2021년에는 경부선에 이어서 또 다른 종축 노선인 중앙선에도 KTX가 다니게 되었으며 운행하게 된 열차는 동력집중식인 KTX, KTX-산천이 아니라 국내 최초의 동력분산식 고속열차인 KTX-이음이었습니다.

KTX-이음

KTX-이음은 국내 최초의 동력분산식 고속열차로 기존의 동력집중식 고속열차인 KTX, KTX-산천과 달리 가운데 칸 뿐만 아니라 앞칸과 뒷칸도 객실로 쓸 수 있게 되면서 승객 수송량을 높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모터가 각 칸에 분산됨에 따라 초반 가속도 역시 상승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것은 바로 독립창을 택했습니다. 기존의 KTX, KTX-산천은 일체형 창문을 택해서 창문 덮개를 내리기 위해서는 앞사람이나 뒷사람의 눈치를 많이 봐야 했습니다. KTX-이음에서는 독립창을 택함으로써 창가 쪽에 앉은 사람들이 눈치를 보지 않고 창문가리개를 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독립창 채택은 승객들 뿐만 아니라 철도차량의 유지보수에도 큰 도움이 되었는데 주행중 튀어오른 자갈에 의해 창문이 손상되는 사고를 예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거기다가 개별 좌석에 AVOD를 장착한 우등실이 등장했으며 비록 우등실 한정이지만 장거리를 이동할 때 지루하지 않게 이동이 가능해졌으며 고/저상홈 겸용으로 설계가 되어서 기존의 KTX, KTX-산천이 저상하던 저상홈 뿐만 아니라 현재의 KTX역에 만들어진 고상홈에도 정차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KTX-이음(슬로건 래핑)

KTX-이음 열차, 특히 502호기의 경우는 '대한민국을 잇다' 라는 표어가 래핑이 되어 있습니다. 이 래핑에서 알 수 있듯이 KTX-이음이 대한민국을 이어준다는 말에서 유래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이 래핑은 맨 왼쪽 열차(1호차)에만 있으며 현재도 제거하지 않고 운행 중입니다.

원주역

중앙선 KTX가 개통하는 과정에서 많은 역들이 이설되거나 폐역되었는데 원주역의 경우는 기존의 학성동에서 무실동으로 옮겨갔으며 신림역, 반곡역, 치악역, 단성역과 같은 구 중앙선상의 역들이 폐역되었습니다.

학성동 옛 원주역

무실동으로 이설된 직후의 학성동 옛 원주역입니다. 오고 가는 사람들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또한 2021년에는 예매 수단에도 큰 변화가 생겼는데 기존의 코레일톡에서만 가능했던 승차권 예매 서비스가 네이버, 네이버지도, 카카오T로도 확대되었으며 이는 코레일톡 없이도 승차권 예매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예매 수단의 확대는 계속 늘어났으며 2023년에는 토스, 국민은행, 신한카드 앱에서도 KTX 예매가 가능해졌습니다. 거기다가 KTX 승차권을 코레일톡뿐만 아니라 카카오톡, 문자메시지로도 전달이 가능해짐에 따라 디지털 소외계층을 위해 KTX 예매를 대신하는 일이 쉬워졌습니다.

그해에는 중앙선 이외에도 새로 개통한 KTX 노선이 있었는데 바로 중부내륙선 KTX입니다. 2021년의 마지막 날에 개통한 중부내륙선 KTX는 부발역에서 충주역까지 운행을 시작했으며 부발에서 충주까지의 소요시간이 줄어듦에 따라 중부내륙지역 승객들이 수도권으로 진입하는 것이 편리해졌습니다. 다만 당시에는 부발에서 끊겨서 이용객이 많지 않았는데 2년 후에 판교역까지 연장됨으로써 해결되었습니다. 또한 강릉선 KTX에 운행되는 열차가 KTX-이음으로 교체되었습니다. 즉, 2021년에는 KTX-이음이 데뷔와 동시에 세 구간에서 운행하게 되었습니다.

1년 후인 2022년에는 다짐유닛과 핸드타이탬퍼가 개발됨으로써 KTX의 안정성이 높아졌으며 KTX 객실 와이파이의 속도가 높아졌습니다. 이 변화들은 우리가 KTX를 더욱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바꾸었습니다. 또한 국내 최초의 고속선 입선용 동력분산식 고속열차인 EMU-320(현재의 KTX-청룡)이 출고되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가 동력집중식과 동력분산식 고속열차 기술을 모두 보유한 나라로 가는 밑걸음이 되었습니다. KTX 정차역 역시 하나가 추가되었는데 경부선 상에 서대구역이 추가되었습니다. 서대구역이 설치됨으로 인해서 대구광역시의 KTX역은 동대구, 서대구 두 개로 늘어났습니다.(참고로 서대구역은 경부고속선이 아닌 경부선 상에 위치해 있지만 일반열차는 통과합니다.)

2023년에는 KTX 이용객이 10억명을 돌파했습니다. KTX 이용객의 10억명 돌파는 개통 19년 6개월만에 대한민국 대표 철도로 성장한 KTX의 위상을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KTX 노선의 연장과 역 추가 역시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대표적으로는 물금역 KTX 정차가 있습니다. 여기서 잠깐!!! 물금역은 경부고속선 상의 역이 아닌 경부선 상의 역입니다. 즉, 물금역에 정차하게 된 KTX는 구포 경유 KTX입니다. 왜 구포 경유 KTX의 정차역에 물금역이 추가되었을까요? 구포 경유 KTX, 서대전 경유 KTX, 수원 경유 KTX를 비롯한 기존선 경유 고속열차는 전 구간 고속선을 이용하는 열차에 비해서 느리게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기존선 역에 최대한 많이 태워야 승객을 최대한 많이 태울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구포 경유 KTX 일부 열차가 물금역에 정차하게 된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중부내륙선 KTX-이음의 판교 연장입니다. 2021년에 개통한 중부내륙선 KTX는 당시에는 부발역까지 가지 못해서 KTX임에도 유일하게 공기수송을 면치 못했습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2023년 12월 28일 판교역까지 연장 운행을 실시했습니다. KTX를 판교역까지 연장하기 위해서 코레일에서는 판교역의 스크린도어를 다중슬라이드형 스크린도어로 교체했습니다. 그 결과 KTX-이음이 판교역까지 운행할 수 있게 되었으며 더 나아가서 신분당선과의 환승이 가능해졌고, 이로 인해서 서울에 조금이나마 가깝게 갈 수 있게 됨에 따라 이용객이 소폭 증가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중앙선 KTX-이음의 서울역 연장입니다. 사실 중앙선 KTX-이음의 서울역 연장은 청량리역의 승강장 길이와 서울역 ~ 청량리역 구간의 선로 용량 포화로 인해서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청량리역 승강장의 길이를 늘리고 강릉선 KTX-이음과 복합열차로 편성해 서원주역에서 연결 및 분리를 하는 해결 방안을 마련한 결과 서울역까지 운행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중앙선 KTX-이음이 서울역까지 연장됨에 따라서 원주에서 목포, 전주를 비롯한 호남선 방향으로 이동하는 것이 쉬워졌으며 서울 도심부까지 빠르게 이동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24년, KTX가 개통한지 20년이 되었습니다. 코레일에서는 KTX 개통 20주년을 기념해서 'KTX 20년의 가치, 100년의 행복' 슬로건을 공개했으며 기념 엠블럼 역시 선을 보였습니다. 기념 슬로건인 'KTX 20년의 가치, 100년의 행복'은 KTX 출범 20년의 성과를 강조함과 동시에 새롭게 나아가는 100년에도 국민의 행복을 우선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KTX 개통 20주년 엠블럼(출처: 철도경제신문)

또한 기념 엠블럼은 빠르게 달리는 KTX의 역동성을 나타냄과 동시에 미래에도 변함없는 혁신을 지향합니다.
 

그리고 2024년에는 강원동계청소년올림픽이 열렸는데 이때도 KTX, 특히 강릉선 KTX는 서울역과 청량리역에서 진부역, 강릉역, 횡성역, 평창역까지 수많은 관람객들과 내빈들을 실어날랐습니다. 만약 강릉선 KTX가 없었다면 많은 관람객들이 평창, 강릉, 횡성까지 빠르게 가지 못했을 것이며 더 나아가서 당일치기 현장 관람이 아예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강릉선 KTX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 동계패럴림픽 뿐만 아니라 2024 강원동계청소년올림픽의 흥행에도 기여를 한 셈입니다. 

2024년에는 KTX가 또 한번의 변화를 맞이했으며 동시에 새로운 도약을 시작했습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KTX-청룡의 운행입니다.

KTX-청룡

KTX-청룡은 형제기인 KTX-이음과 비슷한 동력분산식 고속열차로 기존의 동력집중식 고속열차인 KTX, KTX-산천과 달리 각 칸에 모터가 달려 있어서 최고속도인 320km/h까지 도달하는 데 55초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또한 저상홈에만 운행이 가능한 기존의 KTX, KTX-산천과 달리 형제기인 KTX-이음과 같이 고상홈/저상홈 겸용으로 설계가 되어 있어서 기존의 저상홈 뿐만 아니라 추후에 생길 고상홈에서도 승객을 태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KTX-이음과 다른 점도 있는데 바로 열차의 칸 수와 금띠의 위치입니다. KTX-이음은 1편성에 6칸이고 황금색 띠가 검정색 측면 베젤의 위에 있는 반면에 KTX-청룡의 경우에는 검정색 측면 베젤의 아래에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큰 차이는 속도에 있습니다. KTX-이음은 영업 속도가 260km/h인 반면에 KTX-청룡은 영업 속도가 320km/h입니다. 즉, 영업속도, 열차 한 편성 당 칸 수, 금띠의 위치로 이음과 청룡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KTX-청룡은 올해(2024년) 1월 9일부터 1월 28일까지 명칭 공모전을 거쳤으며 4월 1일에 공개되었습니다. 그리고 한 달 후인 5월 1일부터 본격적으로 운행을 시작했습니다. 현재는 경부선, 호남선 최속달 열차인 서대동부, 용익광에서만 운행 중이지만 추후 수원/인천발 KTX, 평택-오송 고속철도의 개통에 맞추어서 추가분이 들어올 예정입니다. 두 번째로, 우즈베키스탄 고속철도 아프로시욥 2차분으로 KTX-이음이 선정되었는데 이는 KTX의 첫 해외 수출 사례입니다. 왜 2차분일까요? 아프로시욥 1차분 차량은 스웨덴의 Renfe S-130을 기반으로 한 탈고 250 열차로 양쪽에 기관차가 달려 있는 동력집중식입니다. 아프로시욥이 개통할 때에는 2011년으로 국내에는 KTX-산천이 영업 운전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KTX-산천은 수출을 염두에 두고 개발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KTX-산천이 운행되고 있을 당시에는 수출을 염두에 둔 기존의 KTX, KTX-산천과 달리 각 칸마다 전동기가 달려 있는 동력분산식 차세대 고속열차 HEMU-430X가 수출을 염두에 두고 개발이 되고 있었습니다. 만약 HEMU-430X의 개발이 없었다면 지금의 KTX-이음, KTX-청룡이 탄생하지 않았으며 전 세계 고속철도 시장에서 뒤처졌을 수도 있습니다. 현재 수출 계약을 체결한 KTX-이음 기반의 아프로시욥 2차분은 2027년에 우즈베키스탄 철도청에서 도입 예정입니다. 또한 KTX-이음 기반의 열차를 수출함으로 인해서 향후 다른 나라에도 KTX의 수출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으며 비록 다른 나라 열차의 이름지만 KTX가 실크로드를 달리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약 통일이 된다면 아프로시욥 2차분과 원본 모델인 KTX-이음이 같이 우즈베키스탄의 철도를 달리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잠깐!!!! 우즈베키스탄 아프로시욥 2차분과 KTX-이음은 열차 편성과 대차의 크기가 비슷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즈베키스탄 아프로시욥 2차분은 KTX-이음 내수용과 달리 7량 1편성이며 저상홈 전용으로 설계되었습니다. 또한 한반도보다 두 배를 넘게 달리는 우즈베키스탄 고속철도의 특성을 고려해서 식당차를 설치했으며 광궤용 대차를 장착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열차만 수출하지 않았습니다. 코레일에서는 우즈베키스탄에 KTX-이음과 청룡을 정비했던 직원들을 우즈베키스탄 현지에 파견한 뒤 우즈베키스탄 철도청과 함께 유지보수 업무를 수행함과 동시에 기술을 전수하기로 했습니다. 이 수출로 인해서 우리나라는 KTX가 개통한지 20년만에 고속철도 수출국 대열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로는 중앙선 KTX가 부전역까지 연장됩니다. 현재 중앙선 KTX는 안동까지밖에 운행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부산 부전역까지 가려면 무궁화호를 타고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중앙선의 복선전철화가 경주역까지 완공되고 2025년 말까지 신호 설비가 완공이 된다면 중앙선 KTX를 타고 부전역까지 2시간 30분에 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또한 중부내륙선 KTX가 문경역까지 연장됩니다. 이외에도 수원/인천발 KTX, 경전선 부전-순천 간 KTX-이음, 동해선 부전-강릉 간 KTX, 서해선 KTX, 춘천속초선 KTX와 같이 KTX 노선은 더욱 확대될 것입니다. 그만큼 KTX의 미래는 밝다고 할 수 있으며 전국이 반나절 생활권에 도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KTX와 나의 이야기

KTX의 역사를 알아보다보니 우리 가족 역시 KTX를 이용했던 적이 있었는데 대표적으로는 2013년 12월 1일의 울산 당일치기 원정이 있었습니다. 또한 제가 KTX를 처음 타 본 것은 2005년에 분당에서 포항을 가기 위해 동대구역까지 이용했으며 동대구역에서는 무궁화호로 환승해서 포항까지 갔습니다. 그리고 2009년 포항-성남의 준결승전, 2014년 부산모터쇼 관람 당시에도 KTX를 이용했습니다. 이외에도 작년에 외할머니께서 편찮으실 때 검진을 받으러 분당서울대병원으로 가기 위해 포항에서 분당까지 KTX를 이용한 적이 있었으며 사촌 누나가 서울에서 원주로 내려갈 때도 KTX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KTX와 관련된 저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2005년 - 내 생에 첫 KTX 탑승

2005년 어느 날 저랑 엄마는 KTX를 타기 위해 집에서 서울역으로 출발했습니다. 집에서 서울역으로 가던 도중 차가 막혀서 900번 버스에서 내려 택시로 갈아타고 서울역까지 갔습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동대구역까지 가기 위해 서울역에서 부산으로 가는 KTX를 탑승했습니다.당시에는 포항까지 KTX가 개통하지 않아서 동대구역에서 무궁화호로 갈아타야만 했지만 KTX 덕에 동대구까지 2시간 만에 올 수 있었습니다. 그날 KTX를 처음 타 본 저는 KTX의 속도가 신기했으며 빨리 갈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만약 KTX가 없었다면 저랑 엄마가 동대구까지 2시간만에 갈 수가 없었겠죠? 비록 포항에서 분당으로 돌아올 때는 비행기를 이용했지만 KTX를 처음 탔을 때의 기분은 저도 잊을 수 없습니다. 

2009.12.04- 두 번째 KTX 여행

2009년 12월 4일, 저는 엄마, 아빠랑 포항으로 가기 위해 서울역에서 KTX에 탑승했습니다. 이날 우리 가족이 KTX를 이용하게 된 계기는 제가 KTX 타고 가자고 노래를 부른 것도 있지만 일요일날 경기를 본 후에 운전해서 다시 올라가는 것이 아빠한테는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때도 KTX가 포항까지 개통하지 않아서 동대구역에서 새마을호로 환승해서 포항까지 가야 했지만 처음으로 우리 셋이 타 본 KTX라서 그런지 기분만큼은 좋았습니다.

KTX 좌석에 앉은 어린 시절의 나(출처: 민간인 족쟁이)

그렇게 포항에 도착한 우리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를 만났으며 북부해수욕장 근처에 있는 죽천 회식당에서 맛있는 물회를 먹었습니다. 그리고 2009년 12월 5일, 포항과 성남의 경기를 관람했는데 결과는 포항이 패배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포항 선수들의 투지를 알고 있었기에 아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포항역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동대구역까지 간 뒤 동대구역에서 KTX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했습니다.(포항역에서 동대구역까지 이용했던 무궁화호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기관차가 앞에서 견인하는 객차형 무궁화호가 아닌 RDC 무궁화호로 현재는 내구연한 도래로 인해 퇴역했습니다.) 비록 시간은 걸렸지만 재미있는 추억이 되었습니다.

2013.12.01 - KTX가 가져다준 국내대회 더블

2013년 12월 1일은 저에게는 세 번째 KTX 이용이었습니다. 이날은 엄마도 같이 가기로 했지만 모종의 사정으로 인해서 아빠랑 저만 가게 되었습니다. 울산으로 출발하기 위해 우리는 새벽에 서울역까지 간 다음에 KTX에 탑승했습니다. 울산으로 가는 KTX 안에서 우리는 도시락도 먹었는데 그때 그 도시락은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도시락도 먹고 이야기도 하던 도중 우리는 울산에 도착했습니다. 울산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울산역 앞에서 KTX리무진버스 5004번을 타고 울산대 앞에 도착했으며 거기서 영운이 아저씨를 만나 점심을 먹고 난 다음에 동해안더비를 보기 위해 울산 문수구장으로 출발했습니다. 울산 문수구장에 도착한 우리는 티켓을 예매했으며 동시에 원정석으로 입장했습니다. 문수구장 원정석에서 경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우리는 화장실을 다녀왔으며 포항 선수들의 워밍업 장면을 보았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고 '우리 선수들이 이기고 싶구나' 하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날 오후 2시, 제 생에서 잊을 수 없는 경기가 열렸습니다.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우리 선수들과 울산 선수들은 서로 맞부딪혔는데 사실 공격은 포항만 했으며 울산은 수비로만 일관했습니다. 전반 내내 우리는 공격을 퍼부었지만 울산의 수비에 막혀서 0:0으로 끝났습니다. 후반전에도 공격을 한 쪽은 우리였으며 울산은 수비수들만 투입해서 어떻게든 비기려고 애를 썼습니다. 특히 박성호, 김승대의 슛이 김승규에게 막히면서 경기가 울산의 우승으로 마무리되는 듯 했습니다. 그렇게 경기가 추가시간까지 진행이 되었지만 신영준의 프리킥이 빗나가는 것과 같이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면서 울산의 우승으로 마무리가 되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추가시간 5분이 지났을 무렵,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KTX 타고 가서 본 포항 우승 장면(출처: 포항 50주년 매거진)

김재성이 프리킥을 벽과 골키퍼 사이로 찼는데 그 앞에서 혼전이 일어났습니다. 이 혼전 속에서 우리 선수들과 울산 선수들은 공을 갖기 위해 난타전을 벌였고 난타전 끝에 김원일 선수가 골을 넣었습니다. 이 골은 이 경기의 결승골이 되었으며 경기가 끝남과 동시에 포항이 다섯 번째 별을 달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날 경기를 보고도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우승 시상식이 끝난 뒤 우리는 비행기로 이동하는 영운이 아저씨 일행과 헤어진 뒤 울산대학교 앞까지 가서 KTX울산역행 리무진버스를 타고 울산역으로 향해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9시가 넘어서 KTX를 타고 분당으로 향했는데 처음으로 광명역에서 내렸습니다. 첫 당일치기 직관에 저도 피곤했지만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만약 KTX가 없었다면 당일치기 K리그 결정전 직관도 불가능했을 것이며 빨리 가기 위해서는 김포공항까지 긴 시간을 이동한 다음에 비행기를 타고 가야 했을 것입니다. 저는 현재 청년이 되었지만 KTX를 타고 당일치기로 울산에 가서 포항 승리를 본 경험은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2014.05.31 ~ 06.01 - 내 생에 첫 부산 여행

2014년 5월 31일에 저는 엄마, 아빠랑 부산모터쇼를 보러 가기 위해 집에서 서울역까지 출발했습니다. 서울역에 도착하자마자 우리 가족은 공항철도 근처 우동집에서 아침으로 우동을 먹은 뒤 KTX를 타기 위해 서울역 승강장으로 내려갔습니다. 우리가 서울역 승강장에서 KTX를 기다리는 사이, KTX가 승강장으로 들어왔습니다. KTX가 승강장으로 들어오자마자 우리는 우리의 호차와 자리를 찾아서 앉았습니다. 우리가 자리에 앉고 나서 출발 시간이 되자 KTX는 출발했습니다. 우리는 부산으로 가는 KTX 안에서 벡스코로 가는 교통편 이야기와 같은 부산 여행과 관련된 이야기들과 엄마가 오랜만에 KTX를 타본 이야기와 같은 각종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그러던 중 부산으로 가기 전인 마지막 역인 울산역에서 아빠는 "작년에 우리가 여기서 내렸었지?" 라는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리고 KTX가 부산역에 도착하자마자 우리 가족은 벡스코로 가기 위해 1001번 버스를 타려고 했는데 사람이 많아서 택시를 타고 벡스코로 갔습니다. 벡스코로 가는 길에 우리는 처음으로 광안대교를 건넜는데 이 때의 기분은 지금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벡스코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부산모터쇼를 관람했습니다. 저는 부산모터쇼를 관람하면서 현대 일렉시티와 초기형 엑시언트, 그랜버드, 그랜드 스타렉스 리무진을 비롯한 각종 전시차들을 타볼 수 있어서 기분이 매우 좋았습니다. 특히 올 뉴 카니발 하이리무진 전시차를 타 본 것은 제가 연예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부산모터쇼를 관람한 뒤 저희는 숙소로 이동했습니다. 거기서 짐을 풀고 잠깐 쉬었다가 부산 영화의 거리를 걸었는데 영화관들과 각종 먹을거리들이 늘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서 부산이 왜 영화의 도시인 지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국제시장도 둘러보았는데 국제시장의 먹자골목이 왜 유명한 지 알 수 있었으며 대형마트와 다른 현지 전통시장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에는 부산 남포동 먹자골목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이 맛은 다른 어디를 가도 먹을 수 없는 맛이어서 기회가 된다면 다시 오고 싶어지는 그런 맛이었습니다. 저녁을 먹고 난 뒤에는 자갈치시장 일대를 걸으며 바닷바람을 느꼈으며 거기서 회를 사갔는데 그날 속이 좋지 않아서 저는 먹지 못했습니다. 

다음 날에는 호텡에서 아침을 먹고 보수동 책방골목을 둘러보았습니다.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엄마는 고전들을 사 주었으며 저는 쌩큐! 긴급구조119 만화책과 노빈손, 에버랜드에 가다 책을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체크아웃을 하고 난 뒤 점심을 먹으러 가야 했는데 기차 출발 시간이 3시였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남포동 먹자골목에서 밀면을 먹었습니다. 제가 밀면을 먹은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맛이었습니다. 그리고 남포역에서 부산 1호선을 타고 부산역까지 간 다음에 부산역 대합실로 이동했습니다. 부산역에 도착하자마자 아빠는 빨리 가는 다른 열차편으로 바꾸기 위해서 매표소로 갔습니다. 그럼에도 표가 없자 아빠는 수원 경유 KTX까지 알아보았지만 결국 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울로 가는 138 열차에 탑승했습니다. 우리가 탄 KTX는 오후 3시가 되자마자 부산역을 출발했으며 바로 금정터널에 진입했습니다. 금정터널을 빠져나온 KTX는 30분도 채 되지 않아서 울산역에 정차했으며 울산역에서 승객들을 태운 뒤 신경주역(현 경주역)을 통과한 다음에 동대구역에 정차했습니다. 동대구역에서 손님들이 타고 내린 뒤에는 대전역, 천안아산역에서 각각 손님들을 태욱 내렸습니다. 저는 KTX 안에서 호두과자를 사 먹었는데 그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동안 KTX는 광명역을 통과한 뒤 서울에 진입해서 영등포역, 용산역을 지나 종점인 서울역에 도착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서울역에 도착하자마자 광역버스를 타고 집으로 갔습니다. 부산을 갔다오느라 피곤했지만 KTX 여행의 짜릿함은 어른이 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만약 KTX가 없었다면 부산으로 빨리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타야 했으며 특히 기상상황이 좋지 않으면 부산에 늦었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하루 전에 부산으로 출발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그날 KTX를 이용한 것은 최고의 선택이었습니다.

이후로 우리 가족은 KTX를 이용하지 못했지만 제가 중학교 때 외할머니가 분당으로 오기 위해서 KTX를 이용했으며 고등학교 2학년 때 스탠트 시술을 받고 포항으로 갈 때에도 KTX를 이용했습니다. 또한 가장 최근에 여수로 갈 때 SRT를 이용했지만 SRT 열차 역시 KTX-산천 차량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KTX를 싸게 이용한 것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재작년에 외할머니께서 편찮으실 때 검진을 받기 위해 KTX를 타고 분당과 포항을 오고 갔으며 아빠가 광명역까지 마중을 가야 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고 외할머니가 나아지기를 바랬지만, 결국 3월 2일에 돌아가셨습니다. 이외에도 서울에서 자취중인 사촌 누나가 원주를 오고 갈 때 KTX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비록 저는 중앙선 KTX를 이용해보지 못했지만 KTX는 우리 가족의 삶에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저 역시 기회가 되면 다른 KTX 노선들을 이용해보고 싶습니다.

KTX의 역사와 KTX의 뜻, KTX와 관련된 나의 사연을 얘기하고 나니 만약 KTX가 없었다면 우리가 동대구까지 환승하러 빨리 갈 수 있었을까, 2013년 12월 1일에 울산까지 당일치기로 갈 수 있었을까, 비행기 없이도 부산까지 빨리 갈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만큼 KTX 덕에 우리가 편리하게 장거리를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KTX의 역사와 뜻, 나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노래 및 관광 명소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볼까요?

<KTX 개통 20주년, 우리 주변에 나타난 변화-2에서 계속>

출처

 

20년을 달려왔던 새마을호 동차, 역사속으로...

서울시대표소통포털 - 내 손안에 서울

mediahub.seoul.go.kr

 

 

포항 나들이 - 2009 K-리그 플레이오프, 포항:성남

그새 일주일이 지났네요. 그리고, 포항을 대신해서 2009 K-리그 챔피언을 차지할 팀이 내일이면 결정 되겠군요. 전북이 우승하기를 내심 바래봅니다. 그래도, 그들이 2009년 최고의 팀이었으니 마

worldcup.tistory.com

 

 

KTX

KTX가 고객을 만나기까지 KTX 20주년 기념 홍보영상 파일:001호대.jpg 동대구역 에서 정차중인 KTX열차

namu.wiki

 

 

KTX(차량)

300km/h로 경주역 을 통과하는 KTX 대전역 을 출발하는 KTX 한국철도공사 (당시 철도청 )가 최초로 도

namu.wiki

 

 

KTX-산천

파일:KTX-II.jpg KTX-Ⅱ 첫 출고식 당시에는 KTX-I의 후계차량이라는 의미로 KTX-Ⅱ로 불렸었다. 옆

namu.wiki

 

 

KTX-이음

파일:KTX-이음 BI.svg 열차 소개 영상 KTX-이음은 한국철도공사 에서 운영하는 준고속철도 브랜드 및

namu.wiki

 

 

KTX-청룡

KTX 청룡 열차 소개 영상 한국철도공사 에서 도입 및 운행 중인 3세대 1세대: 100000호대( KTX ) 2세

namu.wiki

 

 

"KTX 개통 20주년 기념 슬로건ㆍ엠블럼 선보여" - 철도경제신문

[철도경제신문=장병극 기자] KTX가 올해 스무살이 된다. 한국철도공사는 KTX 개통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슬로건과 엠블럼을 선보였다.코레일은 지난 2004년

www.redaily.co.kr

코레일 KTX 개통 20주년 브랜드북

오재학 외 3명, KTX 경제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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